김민준VIEW PROFILE →
인공지능 메모리 전쟁의 승자는 한국: SK하이닉스와 삼성이 HBM 시장을 장악하다
폭발적인 인공지능 수요 속에서 한국의 두 기업이 고대역폭 메모리 시장을 사실상 지배하고 있다. SK하이닉스는 HBM4 양산에 돌입했고 삼성은 엔비디아 공급 경쟁에 다시 뛰어들었다.
전 세계가 인공지능 열풍에 깊이 빠져 있는 지금, 그 거대한 흐름의 한가운데에 다름 아닌 한국이 서 있다. 최첨단 인공지능 반도체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고대역폭 메모리, 이른바 HBM 시장을 한국의 두 기업이 사실상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HBM은 방대한 데이터를 초고속으로 처리해야 하는 인공지능 연산에서 그야말로 심장과도 같은 핵심 부품이다. 아무리 성능이 뛰어난 그래픽 칩이 있어도, 그 옆에서 데이터를 순식간에 공급해 주는 이 특수 메모리가 없다면 최신 인공지능 시스템은 결코 제 속도를 낼 수 없다.
시장을 사실상 지배하는 두 기업
시장 조사 결과는 한국의 위상을 그 어떤 말보다 분명하게 보여준다. 2026년 1분기를 기준으로 SK하이닉스는 HBM 시장에서 약 58퍼센트라는 압도적인 점유율을 차지했고, 삼성전자가 약 21퍼센트로 그 뒤를 바짝 이었다. 두 회사를 합치면 점유율은 무려 80퍼센트에 육박하는 수준이다.
이러한 우위는 비단 HBM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인공지능 시대의 또 다른 기반인 전체 D램 시장에서도 삼성전자가 38퍼센트, SK하이닉스가 29퍼센트를 차지하며, 결국 이 두 기업이 세계 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약 3분의 2를 사실상 좌우하고 있는 셈이다.
차세대 HBM4 경쟁의 서막
이제 경쟁의 초점은 자연스럽게 차세대 제품인 HBM4로 빠르게 옮겨가고 있다. SK하이닉스는 2026년 2분기에 발 빠르게 HBM4 양산에 돌입하며 경쟁자들보다 한발 앞서 나갔고, 이 기세를 그대로 몰아 시장의 주도권을 더욱 확실하게 굳히려 하고 있다.
특히 SK하이닉스는 엔비디아의 차세대 인공지능 플랫폼인 베라 루빈에 들어갈 HBM4 물량의 약 3분의 2가량을 공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전 세계 인공지능 반도체 공급망에서 이 회사가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절대적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삼성의 반격

한때 경쟁에서 뒤처졌다는 냉정한 평가를 받던 삼성전자 역시 최근 들어 거센 반격에 나섰다. 삼성은 업계 최초로 HBM4E 시제품을 선보였고, 지난 3월 열린 대형 행사에서는 초당 4테라바이트에 달하는 압도적인 성능의 제품을 전격 공개하며 여전히 살아 있는 기술력을 과시했다.
말뿐 아니라 실제 공급도 이미 시작됐다. 삼성전자는 2026년 2월부터 엔비디아와 AMD 등 세계적인 주요 고객사에 차세대 메모리를 본격적으로 공급하기 시작했으며, 여기에 가격 경쟁력까지 앞세워 그동안 잃었던 시장 점유율을 빠르게 되찾으려 하고 있다.
가격의 무게 역시 결코 만만치 않다. 무려 12단으로 층층이 쌓아 올린 최신 HBM4 한 개의 가격은 600달러를 훌쩍 넘는 것으로 전해진다. 손톱만 한 이 작은 부품 하나에 담긴 정교한 기술과 부가가치가 그만큼 어마어마하게 크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천문학적 투자와 증설 경쟁
폭발하듯 늘어나는 수요를 감당하기 위한 대규모 설비 투자 경쟁 또한 그 어느 때보다 뜨겁다. 삼성전자는 경기도 평택에 새로운 P5 공장을 2028년까지 가동할 계획이며, SK하이닉스는 M15X 공장의 본격적인 가동 시점을 2027년 중반으로 잡고 착실히 준비하고 있다.
두 회사의 이례적인 협력도 크게 눈길을 끈다. 지난해 10월 양사는 오픈에이아이가 추진하는 초대형 프로젝트인 스타게이트에 매달 90만 장에 달하는 D램 웨이퍼를 공급하겠다는 야심 찬 목표에 함께 서명하며, 본격적인 인공지능 시대의 핵심 파트너로 나란히 나섰다.
쉽지 않은 도전들
물론 눈앞의 장밋빛 전망만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지금의 인공지능 열풍이 과연 언제까지 이어질지, 그리고 지금의 막대한 투자가 훗날 과잉 공급이라는 부메랑으로 되돌아오지는 않을지에 대한 신중한 우려의 목소리도 업계 안팎에서 꾸준히 흘러나오고 있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갈수록 격화되는 반도체 갈등 역시 무시할 수 없는 큰 변수다. 촘촘한 수출 규제와 지정학적 긴장은 한국 기업들이 스스로의 힘만으로는 통제하기 어려운 외부 요인이며, 세계 공급망 전체에 언제든 큰 충격을 줄 수 있는 잠재적 위험으로 남아 있다.
그럼에도 변하지 않는 분명한 사실은 하나다. 인공지능이라는 거대한 물결의 가장 깊은 밑바닥에서, 그 흐름을 실제로 묵묵히 떠받치는 핵심 부품을 만들어 내는 나라가 바로 한국이라는 점이다. 적어도 당분간 이 확고한 위상은 쉽게 흔들리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